마추픽추는 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잉카 문명이 남긴 안데스의 미스터리
해발 2,430미터 안데스 산등성이의 마추픽추는 왜, 어떻게 세워졌을까. 파차쿠티 황제의 왕실 별장설과 천문학적 입지 선정, 모르타르 없는 석조 기술, 계단식 농경지 안데네스의 배수 공학, 그리고 리사라가와 빙엄의 발견 이야기까지 정리했습니다.
고대 문명, 한국사, 세계사 속 인물과 사건, 문화유산을 쉽고 깊이 있게 정리하는 지식 공간입니다.
해발 2,430미터 안데스 산등성이의 마추픽추는 왜, 어떻게 세워졌을까. 파차쿠티 황제의 왕실 별장설과 천문학적 입지 선정, 모르타르 없는 석조 기술, 계단식 농경지 안데네스의 배수 공학, 그리고 리사라가와 빙엄의 발견 이야기까지 정리했습니다.
조선의 노비는 사고팔 수 있는 재산이었지만, 독립된 농가를 갖고 재산을 모으며 다른 노비를 소유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양의 노예제와 한 단어로 묶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조선시대 노비 제도 운영 방식을 보면 이 제도는 경국대전의 공노비·사노비 구분, 신공 납부, 일천즉천과 노비종모법의 세습 원칙, 17세기 이후의 도망과 신분 세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시스템이었습니다. 1801년 공노비 해방과 1894년 갑오개혁 폐지까지 비용과…
조선의 양반은 놀고먹는 지배층이었다는 통념은 반만 맞습니다. 조선시대 양반 삶 진실을 따라가면, 이 신분은 대를 이어 급제자를 내지 못하면 곧 흔들리는 불안정한 지위였습니다. 문과 최종 합격자는 3년에 한 번 열리는 식년시 기준으로 33명에 불과했고, 부모상 3년이라는 도덕의 시험까지 통과해야 양반의 체면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법적 특권만큼 의무와 불안도 컸던 신분입니다. 법적 특권과 의무, 경제적 기반,…
훈구와 사림은 흔히 구세력과 신진, 선과 악으로 배우지만 사료는 그렇게 깔끔하지 않습니다. 학계에서도 훈구를 하나의 단일한 정파로 규정하는 데는 신중한 입장이 있습니다. 훈구 사림 대립 조선 변화를 정리하면, 세조 즉위를 도운 공신 집단과 지방에서 성리학을 익힌 신진 학자들의 충돌은 네 차례 사화를 거쳐 선조 대 사림의 집권으로, 다시 동인과 서인의 분화로 이어졌습니다. 누가 무엇을 놓고…
붕당정치는 조선을 망친 소모적 당쟁이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불편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당쟁이라는 틀을 굳힌 시초로 꼽히는 글이 1907년 일본인 학자 시데하라 다이라의 「한국정쟁지」라는 점입니다. 붕당정치 시작 변질 이유를 따라가면 답은 사람의 못남이 아니라 구조에 있습니다. 1575년 이조전랑 후임 문제로 갈린 동서분당에서 출발한 붕당은 인조에서 현종 대까지 50여 년간 서인과 남인이 공존하는 정책 경쟁…
네 차례의 사화에서 사림은 거듭 패했는데, 마지막에 조정을 차지한 것도 사림이었습니다. 패배를 거듭한 쪽이 최종 승자가 되었다면, 이 싸움은 조정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결정된 것입니다. 조선 사림 세력 정치 주도권 원인은 향촌의 서원과 향약, 성종 이후 삼사 진출, 그리고 훈구파의 자기 해체라는 세 가지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중앙에서 밀려난 선비들이 향촌에서 쌓은 기반이 1567년…
신하가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일은 한 번의 쿠데타였는데, 그 값은 조선이 100년 넘게 치렀습니다. 사화와 붕당으로 이어진 갈등의 뿌리는 1453년 한 밤의 칼날에 닿아 있습니다. 세조 왕위 찬탈 상처는 12세의 단종이 즉위하고 이듬해 계유정난으로 재상들이 제거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찬탈의 정당성이 부족했던 세조는 공신에게 막대한 특권을 쥐여 주었고, 그 공신이 훈구파가 되어 사림과 충돌했습니다. 찬탈이 얻은 것과…
태종은 처남들을 죽이고 사돈을 숙청하면서도, 그 피로 세운 제도를 자기 아들에게 고스란히 넘겼습니다. 가장 잔혹한 왕이 가장 안정적인 유산을 남겼다는 모순이 태종의 역사입니다. 태종 이방원 왕권 강화는 사병 혁파와 사간원 독립, 육조직계제로 이어지는 일련의 제도 개편이었습니다. 정도전이 구상한 재상 중심의 신권 정치를 눌렀다는 점에서, 그가 고집한 것은 개인의 권력만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설계권이었습니다. 피의 숙청이…
거대한 석상을 세우려고 섬의 숲을 베어 낸 사람들이 정작 그 석상 때문에 굶었다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깔끔해서 의심스럽습니다. 모아이는 신앙의 증거인 동시에 비용 계산서였습니다. 모아이 석상 미스터리의 답은 외계인이나 초자연이 아니라 조상의 영적 보호력인 마나 신앙과 추장들의 권력 경쟁이라는 두 가지 동기에 있습니다. 평균 4톤에서 최대 80톤에 이르는 석상은 라노 라라쿠의 화산 응회암을 깎아 만들어 섬…